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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다"
이 름 : 김선식   작성일 : 2011-04-27    
 
다석 류영모는 아직 많은 사람에게 낯선 인물이다. 내가 다석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일이다. 불교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다가 다석 선생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사상가 중에 가장 큰 사상가이다. 1890년에 출생하여 1981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하루 한 끼를 먹고 오직 수도와 교육에 매진하여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 철학과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이다. 그는 석가, 노자, 장자, 공자, 예수, 간디가 이른 드높은 경지에 오른 정신적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경은 석가 붓다가 제자 수부티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경전이다. 금강경의 산스크리트어원명은 Vajracchedika(바즈라체디카)이다. Vajra는 벼락(thunderbolt)이고 cchedika는 승리(victory)이다. 여기서 바즈라, 벼락은 에고를 죽이고 참나가 되는 벼락같은 가르침을 뜻하고, 체디카, 승리는 거짓나(제나, 에고)가 죽고 참나로 부활하는 것이 바로 승리라는 것이다. 금강경은 속뜻은 벼락같은 부활을 주는 경이 될 것이고, 겉뜻은 금강처럼(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영원이 불변하는 진리를 담은 경이란 뜻이다. 금강경의 저자는 물론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말씀 하신 것을 부처님이 죽고 3백년 뒤에 제 3세대 제자들이 결집하여 엮는 경전이다.

금강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도 금강경의 이 구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應無所住而生基心(응무소주이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다"라는 뜻이다. 금강경 핵심 한토막이다. 다석 류영모는 금강경을 읽고 하느님을 모른다면 잘못 읽은 것이라고 확신에 찬 진리를 말한다. 그는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했으나 불교와 노장, 공맹사상을 두루 설렵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사상가이다. 그는

"불경이나 성경을 보는 것을 삶을 알아보자 하는 데 참고가 되는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인생에 대한 하나의 참고서다. 나와 불경이니 성경의 관계가 이러하다. 불경이니, 성경이니 하는 것은 제나(自我, ego)를 죽이는 하나의 도구이다. 제나(自我, ego)의 마음이 죽어야 텅 빈 참나의 마음이 부활한다."

참나가 불성이고 하나님이다. 참나로 부활하면 應無所住而生基心(응무소주이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경지에 오른다. 참나가 제나(自我, ego)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불교를 믿는 것은 불성(참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기독교를 믿는 것은 하느님(참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불성과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는가? 제나(自我, ego)를 죽이면 된다. 제나는 거짓이고 욕망이며, 수성(짐승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제나를 죽이면 얼나(참나)가 나타난다. 그러면 내가 곧 우주이고, 개체와 전체가 통일되는 순간, 전체의 주관자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것을 법신(法身,참나, 얼나, 하느님, 불성)이라 하는데 법신이란 뜻은 하느님이 내 몸에 입혀졌다. 그렇게 되면 법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하느님처럼, 불성처럼.

제나(自我, ego)를 죽이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을 붓다는 탐진치(貪瞋痴, 탐하는 마음(욕망),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라고 보았고, 예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았다. 제나(自我, ego)를 완전히 죽이면 참나가 보이는 데 완벽하게 죽이지 못하는 때문에 수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이요. 내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석가와 예수, 간디와 류영모, 테레사 수녀의 공통점은 독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석가는 결혼을 했다가 스스로 가족을 버렸다. 가족이 제나(自我, ego)를 죽이는 데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의 이름이 라휼라, 장애물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결혼을 하기보다 진리를 얻고자 했으며 자기 제자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를 제 몸처럼 사랑했다. 간디, 류영모, 테레사 수녀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이 보여준 것은 가족을 뛰어넘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깨달음이라는 진리다. 현대인들은 모두 가족에게 불모로 잡혀있다. 나 자신도 그렇다.

인간이 고독한 이유는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개체 보존의 욕망과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그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전까지...
부처와 예수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자식보다 제자가 수 천 배 더 귀하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를 얻어 영원히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제자를 기른다. 영원한 생명은 그의 제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은 누구든지 이미 자기 속에 제나(自我, ego)만 죽이면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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